조선일보

수업은 언제 하느냐고요?
"이렇게 뛰놀며 깨치는 게 공부죠"

요즘 엄마들 사이 인기! 숲유치원 가보니
간섭받지 않고 자연서 스스로 배울 기회
또래와 어울리며 협동… 호기심도 키워

'어라, 아이들 다 어디 갔지?' 지난 7일 오전 9시. 여느 유치원이라면 한창 아이들이 등원할 시각, 서울 꿈땅자연학교(영등포구 문래동)엔 적막이 감돌았다. 원정래 원장에 따르면 이곳 원생들의 학습 공간은 '유치원'이 아닌 '숲'이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집에서 곧장 숲으로 향해요. 간식도, 점심도 숲에서 먹고 눈비 내리는 날도 숲에서 뛰놀죠. 오늘요? 아마 지금쯤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부천생태공원 내 산을 오르고 있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의 사교육 시작 시기는 엄마 배속'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유아교육 열기가 뜨겁지만, 한편에선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숲유치원에 관심 갖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맛있는공부가 그 현장을 직접 찾았다.

"자기주도성·인성·리더십·창의력 절로 자라요"

꿈땅자연학교 원생들은 매일 숲으로 향한다. 교사 지시도, 이렇다 할 교구도 없지만 문제 될 건 전혀 없다. 아이들은 금세 '나만의 장난감'을 찾고 각자 역할 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염동우 기자

원정래 원장이 꿈땅자연학교를 처음 찾은 학부모에게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숲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냐'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해진 거라곤 '원생들에게 숲에서 자유롭게 뛰놀 시간을 준다'는 규정뿐이다. 연령별로 반을 편성하는 일반 유치원과 달리 3세부터 7세까지의 아이들을 두루 섞어 '통합 연령반'을 운영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10년 전 구립 유치원을 운영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놀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독일·덴마크 등 유럽 숲유치원 전문가 세미나장에서 해답을 찾았죠. 일단 유치원 내 장난감을 모두 없앤 후 매일 숲으로 갔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던 학부모들도 자녀의 변화를 목격하곤 '열렬한 지지자'로 돌아서더군요. 당시 경험을 토대로 8년 전 꿈땅자연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는 지난 10년간 숲유치원의 긍정적 효과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곳 교사진은 원생들의 안전 외엔 그 어떤 것에도 간섭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숲에서 친구들과 뭘 하고 놀지 스스로 생각해냅니다. 또래와 어울리는 과정에서 배려심·협동심도 절로 배우죠. 맑은 공기 속에서 뛰노니 심신이 건강해지는 건 당연하고요."

학부모 만족도도 높다. 첫째 아이(11)에 이어 올해 여섯 살이 된 둘째 아이까지 꿈땅자연학교에 보낸 학부모 이진희(37·서울 영등포구)씨는 "첫째가 졸업 후에도 유치원 시절을 그리워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첫째가 네 살일 때 여러 유치원을 돌아봤어요. 가는 곳마다 영어·중국어·가베·수학 등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더라고요. '이제 고작 네 살짜리 아이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닐까?' 싶었는데 유치원에선 오히려 그걸 자랑스레 얘기하더군요. 그 길로 당장 숲유치원을 알아봤죠."

임재택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한국숲유치원협회장)는 "아이를 유치원과 학원에 가둬놓고 인성과 창의력을 기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 역시 3년 전부터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을 숲유치원 형태로 바꿔 운영 중이다. 그는 숲유치원 원장이나 교사들에게 "아이들과 산에 갈 땐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에게 일절 '지시'를 하지 말란 뜻이다.

그는 학부모에게도 틈날 때마다 "학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숲유치원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교사 얘길 주입하지 말고 자연에서 몸으로 경험하며 배울 기회를 주자는 겁니다. 교실에서 책 펴놓고 봄 새싹과 가을 단풍을 가르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숲유치원 아이들은 숲에 오르며 곤충·식물도감을 안고 갑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도감을 뒤적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글도 배우죠. 집중력·탐구력·호기심도 덩달아 자라고요. 좀 불안해도 딱 3개월만 지켜보세요. 달라진 아이 모습을 보면 생각이 바뀔 테니까요."

최근 숲유치원이 인기를 끌면서 '수박 겉 핥기' 식 체험에 그치는 '사이비 숲유치원'이 적지않다. 임 교수는 "숲에서 아이에게 얼마나 자유를 주는지부터 살피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을 숲에 앉혀놓고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가짜입니다. 숲유치원엔 '프로그램'이란 게 없으니까요. 되도록 1주일에 2회 이상, 회당 서너 시간은 숲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게 하는 곳을 고르세요."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